유명한 사건으로 돌아가기

유명한 성경 사건 · 네 복음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마지막 식사 한 자리에서 유월절과 배신, 빵과 잔, 씻겨진 발과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만납니다.

최후의 만찬은 긴 식탁에 모두가 가만히 앉아 있는 한 장면으로 기억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의 밤은 계속 움직입니다. 마태·마가·누가복음은 이 식사를 유월절 안에 놓고 예수님이 빵과 잔에 새로운 의미를 주신 일을 전합니다. 요한복음은 유월절 전에 장면을 시작해 발 씻김과 떠남, 사랑과 긴 고별 말씀에 집중합니다. 기록을 곧바로 하나로 합치기 전에 각각의 흐름으로 읽으면 중심 장면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억지로 하나의 시간표를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먼저 짧게 답하면

예수님은 체포되기 전날 밤 가까운 제자들과 식사하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을 넘겨줄 것이라고 예고하고, 자신이 떠날 일을 준비시키십니다. 공관복음이라 부르는 마태·마가·누가복음에서 이 식사는 유월절 식사로 준비됩니다. 예수님은 빵과 잔을 들어 자신의 몸과 피, 언약과 곧 다가올 죽음에 연결하십니다.

요한복음은 이 밤을 다른 방식으로 전합니다. 이 식사에서 빵과 잔을 제정하는 장면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고, 배신할 사람을 가리키며, 자신이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십니다. 기록들은 마지막 식사와 다가온 배신을 함께 전하지만, 합쳐 읽기 전에 각자의 순서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 나오는 말

성경이 처음이라면, 이 말부터 확인하세요.

글을 읽는 데 필요한 뜻만 짧게 풀었습니다. 미리 알고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복음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전하는 신약성경 네 책입니다.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을 가리킵니다.
제자
스승에게 배우며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 글에서는 주로 예수님을 따른 사람을 뜻합니다.
언약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약속과 책임으로 세운 관계입니다.
유월절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난 일을 기억하는 유대교 절기입니다.
메시아 / 그리스도
‘기름부음 받은 이’라는 뜻의 칭호입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성이 아니라 칭호입니다.
성령
그리스도교에서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하시며 일하시는 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준비와 저녁

식사는 유월절 이야기 안에서 시작되지만 복음서의 날짜 구성은 다릅니다

마태·마가·누가복음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식사를 준비했다고 말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일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배경에는 이미 구원과 언약, 심판,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새롭게 살아갈 백성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다만 복음서가 1세기 유월절 식사의 모든 순서를 안내하는 책은 아닙니다. 절기의 배경을 통해 예수님의 마지막 밤을 이스라엘의 더 큰 이야기 안에 놓습니다.

요한복음은 “유월절 전에”라는 말로 식사 장면을 시작합니다. 뒤에서는 일부 지도자들이 아직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말하고, 예수님이 재판받은 날을 유월절의 준비일로 표시합니다. 이 시간 차이를 설명하려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먼저 확인해야 할 사실은 간단합니다. 공관복음은 이 식사를 분명히 유월절이라고 부르고, 요한복음은 마지막 날들을 다른 시간 구성으로 전합니다. 공통 의미를 찾기 위해 이 차이를 감출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에서 확인하기출애굽기 12:1–28 · 마태복음 26:17–20 · 마가복음 14:12–17 · 누가복음 22:7–14 · 요한복음 13:1–2 · 18:28 · 19:14

식사하는 동안

빵과 잔은 곧 일어날 죽음을 해석합니다

마태·마가·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빵을 들어 감사하거나 축복하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며 자신의 몸과 연결하십니다. 이어 잔을 주고 자신의 피와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피를 말하고, 누가복음은 새 언약과 예수님을 기억하며 이 일을 행하라는 명령을 함께 전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도 이와 매우 가까운 전승이 남아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찬, 주의 만찬 또는 유카리스트라고 부르는 그리스도교 예식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후 교회 전통은 그리스도의 임재, 성례, 희생과 기념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설명해 왔습니다. 각 교리는 자기 문맥에서 정확히 다룰 필요가 있으며, 복음서 한 장면이 후대의 모든 논쟁을 한 문장으로 끝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빵과 잔은 다가올 예수님의 죽음을 제자들이 함께 받고 기억하며 선포할 사건으로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확인하기마태복음 26:26–29 · 마가복음 14:22–25 · 누가복음 22:14–20 · 고린도전서 10:16–17 · 11:23–26

긴장이 흐르는 식탁

배신이 예고되는 동안 제자들은 누가 큰지 다툽니다

네 복음서는 모두 식탁의 친밀함 안에 배신할 사람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예수님은 함께 먹는 사람이 자신을 넘겨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자신과 서로를 의심하며 묻고,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유다에게 한 조각을 건네신 뒤 유다가 밤으로 나갑니다. 배신은 멀리서 오는 위협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함께 나눈 식탁 안에서 시작됩니다.

누가복음은 식사 말씀 뒤에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에 대한 제자들의 다툼을 놓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으로 지도력을 다시 정의하십니다. 요한복음은 그 가르침을 몸의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른 채 제자들의 발을 씻으십니다. 베드로는 거절하다가 받아들입니다. 이는 굴욕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주님과 선생으로 불리는 분이 종의 자리를 취하고 제자들이 따라야 할 모범을 주신 장면입니다.

성경에서 확인하기시편 41:9 · 마태복음 26:20–25 · 마가복음 14:17–21 · 누가복음 22:21–27 · 요한복음 13:2–30

유다가 나간 뒤

새 계명은 제자 공동체가 드러날 표지를 줍니다

유다가 나간 뒤 예수님은 자신이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사랑이라는 명령이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새 계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레위기에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사랑의 기준은 지금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사랑, 곧 섬김으로 나타나고 십자가를 향해 가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통해 제자들이 누구인지 드러나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이어 성령에 대한 약속,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 반대에 대한 경고와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를 길게 전합니다. 공관복음은 식사 뒤 감람산으로 움직이며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고, 고통 속에서 기도하는 장면으로 나아갑니다. 따라서 최후의 만찬은 감상적인 평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배신과 부인, 흩어짐과 체포가 가까운 가운데 제자들은 빵과 잔, 씻겨진 발,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성경에서 확인하기레위기 19:18 · 마태복음 26:30–35 · 마가복음 14:26–31 · 누가복음 22:28–38 · 요한복음 13:31–17:26

두 칸으로 나누어 만찬 기록을 읽어보세요

공관복음을 한쪽에, 요한복음을 다른 쪽에 놓고 읽습니다. 하나의 시간표를 만들기 전에 행동과 순서를 비교합니다.

  1. 01

    절기를 알리는 말을 표시하기

    유월절, 준비, 때, 다음 날을 가리키는 표현을 모두 표시하고 각 복음서가 자기 시간표를 세우게 둡니다.

    마태복음 26:17–20 · 마가복음 14:12–17 · 누가복음 22:7–16 · 요한복음 13:1 · 18:28 · 19:14

  2. 02

    식탁 위의 손을 따라가기

    누가 준비하고, 들고, 떼고, 주고, 받으며, 씻고, 거절하고, 떠나는지 봅니다. 행동이 가르침을 설명합니다.

    누가복음 22:7–23 · 요한복음 13:2–30

  3. 03

    본문과 해석을 구분하기

    본문이 직접 말하는 주장을 먼저 적습니다. 다음 칸에는 자신이 아는 교회나 자료가 성찬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쓰고 해석이 시작되는 지점을 표시합니다.

    마태복음 26:26–29 · 누가복음 22:19–20 · 고린도전서 11:23–29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식사와 수건, 한 가지 명령으로 자신의 떠남을 설명하십니다.

그 밤은 제자들의 약함도, 복음서 기록의 차이도 지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앞에 놓습니다. 배신과 부인이 다가오는 가운데 예수님은 빵과 잔을 주고, 제자들의 발 곁에서 섬기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그들의 표지로 삼으십니다. 각 복음서를 주의 깊게 읽을 때 이 행동들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하나로 뭉개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