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로 소개된다. 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해 본 계시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유다를 다스리던 여러 시대에 걸쳐 있다. 이사야의 부모 가운데 아버지 이름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고, 어머니의 이름과 출생지와 어린 시절, 처음 예언 활동을 시작한 나이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의 형제자매도 알려지지 않았다. 왕들을 직접 만났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집안을 왕실과 연결하는 추측이 생길 수 있지만, 본문은 그런 배경이나 이전 직업을 확인하지 않는다. 이사야라는 이름을 누가 어떤 상황에서 지었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알려진 가족은 뒤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아내와 표징이 된 두 아들이다. 책의 첫머리는 그가 이미 나라와 성읍을 향해 말하는 선지자였음을 보여 준다. 그는 제사와 기도가 많아도 손에 피가 가득하고 약한 이들의 권리가 짓밟힌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선포하며, 악을 멈추고 고아와 과부를 위해 정의를 구하라고 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이사야는 성전에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다. 스랍들은 저마다 날개가 여섯이었고, 둘로 얼굴을 가리고 둘로 발을 가리며 나머지 둘로 날아다니면서 거룩함을 외쳤다. 그 소리에 문지방이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했다. 이사야는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며 부정한 입술을 가진 백성 가운데 산다고 탄식했다. 스랍 하나가 제단의 숯을 집어 그의 입술에 대며 죄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누구를 보낼지 물으시자 이사야는 자신을 보내 달라고 대답했다. 이 장면은 그가 선지자의 집안에서 자랐다는 설명이 아니라, 자신의 부정함을 인정한 사람이 말씀을 전하도록 보내지는 장면이다.
이사야가 받은 임무는 사람들이 쉽게 듣고 돌아오는 성공을 약속하지 않았다. 그는 백성이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어려운 말을 전해야 했다. 이사야가 언제까지냐고 묻자 성읍과 집과 땅이 황폐해지고 사람들이 멀리 옮겨질 때까지라는 답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잘린 나무의 그루터기 같은 거룩한 씨가 남는다는 말이 뒤따랐다. 그의 활동에는 심판의 경고와 남은 자에 대한 희망이 처음부터 함께 놓였다. 그는 반응이 보장된 말을 맡은 것이 아니라, 거절과 황폐가 예상되는 가운데 계속 전해야 할 말을 맡았다.
아하스 왕 때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가 예루살렘을 공격하려 하자 왕실과 백성은 숲의 나무처럼 떨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아들 스알야숩과 함께 윗못 수로 끝으로 나가 아하스를 만나라고 하셨다. 이사야는 두 적을 연기 나는 나무 끝에 비유하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전했다. 그들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아하스가 굳게 믿지 않으면 굳게 서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야는 왕궁 안에서만 기다린 것이 아니라, 지시받은 수로 끝으로 아들을 데리고 가 그곳에서 왕을 만났다. 아하스가 그 장소에 있던 목적은 본문이 설명하지 않는다.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하나님께 표징을 구하라고 했지만, 왕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며 거절했다. 이사야는 다윗 왕실이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까지 지치게 한다고 꾸짖고, 한 젊은 여인이 아들을 낳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라는 표징을 전했다. 그 아이가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할 줄 알기 전에 아하스가 두려워하던 두 왕의 땅이 황폐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앗수르가 유다에도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사야의 말은 눈앞의 두 왕만이 아니라, 아하스가 의지하려 한 더 큰 제국이 가져올 위험까지 향했다.
이사야의 가족도 메시지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본문에서 여선지자라고 불리지만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사야는 큰 판에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말을 쓰고 제사장 우리야와 스가랴를 증인으로 세웠다. 뒤이어 아내가 아들을 낳자 하나님은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고 하셨다. 아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에게 옮겨질 것이라는 표징이었다. 스알야숩과 이 아이의 이름은 모두 이사야가 전한 경고와 남은 자의 희망을 집 안에서도 보이게 했다.
이사야는 자신과 하나님이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안에서 표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 가운데 증언을 묶고 가르침을 봉해 두라고 했으며,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시는 동안에도 기다리겠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신접한 자와 죽은 자에게 묻는 이들을 찾으라는 말이 들릴 때에는,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고 답했다. 이사야의 공적 활동은 왕에게 정치적 조언을 주는 일만이 아니었다. 제자들에게 말을 보존하게 하고, 가족의 이름을 표징으로 삼으며, 두려움의 시기에 누구를 신뢰할지를 백성에게 묻는 일이었다.
그가 전한 긴 말씀들은 유다의 죄와 주변 민족의 교만을 심판하는 내용뿐 아니라, 전쟁이 그치고 약한 사람이 공정한 판단을 받으며 남은 이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도 담았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백성을 치시면서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며, 앗수르도 스스로 높아지면 심판받을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책의 여러 예언을 이사야 생애의 하루하루와 정확히 연결할 수는 없다. 날짜와 왕이 밝혀진 장면은 구분할 수 있지만, 모든 말이 어느 해에 어떤 순서로 주어졌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책의 초기 말씀에서 이사야는 정성껏 가꾼 포도밭이 좋은 포도 대신 들포도를 맺은 노래를 불렀다. 그 포도밭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가리켰다. 하나님이 정의를 바라셨지만 보이는 것은 피 흘림이었고, 공의를 바라셨지만 들리는 것은 억울한 이들의 부르짖음이었다. 이사야는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붙여 다른 이가 설 자리를 없애는 사람들, 술과 잔치에 빠진 사람들,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악이라 하는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가 말한 나라의 위기는 외국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땅과 재판과 권력을 다루는 방식의 문제이기도 했다.
앗수르 왕 사르곤이 아스돗을 공격하던 해에는 이사야 자신의 몸이 표징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허리의 굵은 베를 풀고 발의 신을 벗으라고 하셨고, 이사야는 명령대로 벗은 몸과 맨발로 다녔다. 그는 삼 년 동안 이집트와 구스에 대한 표징이 되었다. 앗수르가 두 나라의 포로를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끌고 갈 것이므로, 유다가 그들을 의지해 앗수르에서 벗어나려 했던 기대도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이사야는 말로만 동맹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그 경고를 드러냈다.
이사야는 왕뿐 아니라 궁의 고위 관리에게도 직접 말하도록 보내졌다. 그는 왕궁을 맡은 셉나가 자신을 위해 높은 곳 바위에 큰 무덤을 파는 일을 꾸짖고, 그가 관직에서 밀려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이 그 자리를 맡아 셉나의 관복과 띠와 권한을 넘겨받고 다윗 집의 열쇠를 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면에서 이사야의 말은 먼 나라의 운명에만 머물지 않고 예루살렘 내부의 권력과 명예를 향했다. 자신을 위해 남길 기념물을 준비하던 관리에게 그 자리가 영원히 자기 것이 아니라고 선포해야 했다.
이집트의 군사력에 기대려는 정책을 향한 경고도 계속되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파라오의 보호와 이집트의 그늘을 찾는 동맹이 오히려 수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말과 병거가 많고 강해 보여도 이집트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며 그들의 말은 육체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백성이 돌아와 조용히 신뢰하는 데 힘이 있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빠른 말을 타고 달아나겠다고 응답했다. 이사야가 문제 삼은 것은 외교를 생각하는 행위 자체라기보다 하나님을 묻지 않은 채 눈에 보이는 힘을 최종 안전으로 삼는 선택이었다.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유다의 성읍들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위협했다. 앗수르의 대변인은 성벽 가까이에서 히스기야와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말하며 백성의 두려움을 키웠다.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은 뒤 신하들과 제사장 지도자들을 이사야에게 보내 기도를 요청했다. 이사야는 왕에게 모욕적인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답하고, 산헤립이 소문을 듣고 자기 땅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죽을 것이라고 전했다. 아하스 때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압박 앞에서 이사야가 전한 첫 명령은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산헤립의 위협이 편지로 다시 오자 히스기야는 그것을 성전에 펼쳐 놓고 기도했다. 이사야는 왕의 기도가 들렸다는 말씀을 사람을 보내 전했다.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화살을 쏘거나 성을 포위하지 못하고 온 길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가 앗수르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고 산헤립은 니느웨로 돌아갔다. 훗날 그는 자기 신전에서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사야는 군대를 지휘하지 않았지만, 위협의 내용을 하나님 앞에 가져간 왕에게 응답과 도시가 지켜질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린 장면에서도 이사야는 왕에게 갔다. 처음에는 집을 정리하라는 말과 함께 왕이 죽고 살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해 울며 기도하자, 이사야에게 다시 말씀이 임했다. 그는 왕의 기도와 눈물을 하나님이 보셨으며 수명을 십오 년 더하고 앗수르의 손에서 성을 지키실 것이라고 전했다. 이사야는 무화과 반죽을 종기에 붙이게 했고 왕은 회복되었다.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가는 표징도 주어졌다. 처음 전한 말 뒤에 새로운 말씀이 왔을 때 그는 다시 왕에게 돌아가 달라진 소식을 전했다.
병에서 회복된 히스기야에게 바벨론 왕이 편지와 선물을 보냈다. 왕은 사절들에게 보물 창고와 무기고와 나라 안의 소유를 모두 보여 주었다. 이사야는 그들이 어디서 왔고 무엇을 보았는지 물은 뒤, 궁에 쌓인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왕의 후손 가운데 일부도 끌려가 그 왕궁에서 일하게 될 날이 온다고 전했다. 히스기야는 자기 시대에는 평안과 안전이 있을 것이라며 그 말씀이 좋다고 대답했다. 이사야서가 들려주는 마지막 왕과의 대화는 즉시 찾아온 구원이 아니라, 뒤 세대에 닥칠 포로 생활의 경고다.
역대기는 이사야가 웃시야의 나머지 행적을 기록했다고 직접 전한다. 히스기야에 대해서는 그의 행적과 경건한 일들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계시와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두 번째 문장이 왕의 기록 전체를 이사야가 직접 썼다는 뜻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사야가 웃시야의 행적을 기록했고, 히스기야 시대를 다루는 자료에도 그의 계시가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지금 성경이 전하는 그 기록과 계시가 이사야서의 어느 부분과 정확히 같은지도 본문은 설명하지 않는다.
성경은 이사야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후대 전승에는 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만, 이 인물전이 따르는 성경 본문 안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이사야의 마지막 생애 장면은 히스기야에게 바벨론 포로의 날을 경고하는 대화이고, 뒤따르는 장들은 위로와 귀환과 하나님의 종에 관한 말씀을 계속 전한다. 그러나 그 예언들을 이사야의 마지막 날에 일어난 사건처럼 배열할 근거는 없다. 그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은 여러 왕의 시대에 말씀과 가족과 몸과 기록으로 표징을 남긴 선지자였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