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살던 제사장들 가운데 힐기야의 아들로 소개된다. 그의 어머니와 형제자매, 출생 연도와 어린 시절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가 제사장 집안에서 어떤 일을 하다가 선지자가 되었는지도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시점이 밝혀진 사건은 요시야 왕 제십삼년에 받은 부르심이다. 말씀은 뒤이어 여호야김 시대를 지나 시드기야 제십일년, 예루살렘 주민들이 끌려가던 다섯째 달까지 그에게 임했다. 이 머리말은 한 번의 설교가 아니라 여러 왕의 통치와 나라의 붕괴를 가로지른 긴 활동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태어나기 전부터 아셨고 여러 나라를 향한 선지자로 세우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자신이 너무 어려 말할 줄 모른다고 대답했다. 정확한 나이는 나오지 않으므로 이 말을 어린아이였다는 계산으로 바꿀 수는 없다. 하나님은 나이가 어리다고 말하지 말고 보내는 곳에 가서 명령받은 것을 전하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손을 그의 입에 대어 말씀을 두셨고, 뽑고 무너뜨리는 일뿐 아니라 세우고 심는 일도 맡기셨다. 예레미야가 본 편도나무 가지는 하나님이 말씀을 지켜 이루신다는 표징이었고, 북쪽에서 기울어진 끓는 가마는 닥쳐올 재앙을 가리켰다. 그는 왕과 지도자와 제사장과 백성을 향해 말해야 했고, 반대에 부딪혀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의 개인 생활도 다가오는 재난을 드러내는 표징이 되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아내를 맞거나 아들과 딸을 두지 말라고 하셨다. 또한 초상집에 들어가 애도하거나 잔칫집에 들어가 먹고 마시는 일도 삼가게 하셨다. 곧 죽음과 유배 때문에 평소의 장례와 혼인 기쁨이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본문은 예레미야가 이전에 결혼했거나 약혼했다가 헤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결혼하거나 자녀를 두지 말라는 명령 자체가 그가 전한 시대의 위기와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예레미야는 성전 문에 서서 예배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생활과 행동을 고치라고 외쳤다. 성전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라, 이웃 사이에 정의를 행하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으며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도둑질과 살인과 거짓 맹세를 계속한 채 성전에 들어와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태도를 꾸짖었다. 실로의 성소도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예루살렘 성전도 무조건적인 보호막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그가 다룬 문제는 의식의 부족보다 예배와 일상이 갈라진 삶이었다.
여호야김 통치 초기에 예레미야가 같은 경고를 성전 뜰에서 전하자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이 그를 붙잡고 죽어야 한다고 했다. 관리들이 왕궁에서 올라왔고, 예레미야는 자신을 보내신 분이 이 말을 맡기셨으니 길을 고치라고 답했다. 자기 목숨은 그들의 손에 있지만 무죄한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관리들과 백성은 그가 죽을 죄를 짓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원로들은 히스기야 시대 미가의 경고를 예로 들었다. 같은 시대에 비슷한 말을 전한 우리야는 이집트로 피했지만 여호야김이 사람을 보내 데려와 죽였다. 예레미야는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보호를 받아 백성의 손에 넘겨지지 않았다.
말씀을 보여 주는 행동은 계속되었다. 예레미야는 베 띠를 사서 허리에 두르고, 뒤에는 그것을 감추었다가 썩어 쓸 수 없게 된 모습을 통해 유다와 예루살렘의 교만이 무너질 것을 알렸다. 옹기장이 집에서는 그릇이 잘못되자 진흙을 다시 빚는 모습을 보았고, 한 민족에 대한 재앙의 선언도 그들이 악에서 돌이키면 달라질 수 있으며 좋은 약속도 악을 행하면 거두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백성의 원로들과 제사장 원로들을 데리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가 옹기를 깨뜨렸다. 깨진 그릇을 다시 온전하게 할 수 없듯 도성과 백성에게 닥칠 파괴를 경고하는 행동이었다.
성전의 감독 책임을 맡은 제사장 바스훌은 예레미야가 예언하는 것을 듣고 그를 때린 뒤 차꼬에 채웠다. 다음 날 풀려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바스훌을 사방의 두려움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부르시며 그와 벗들이 포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단호하게 말한 뒤 이어 기록된 개인적인 고백은 단순하지 않았다. 조롱과 위협 때문에 다시는 말씀을 전하지 않으려 해도 그것이 뼛속에 갇힌 불처럼 타올라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을 구하실 하나님을 노래하다가 곧이어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왜 고생을 보려고 세상에 나왔는지 탄식했다. 예레미야서는 그의 용기를 고통을 느끼지 않는 성격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목에 줄과 멍에를 만들어 메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는 불편한 메시지를 전했다. 성전에서 하나냐는 빼앗긴 기물과 포로들이 이 년 안에 돌아온다고 말하며 예레미야의 나무 멍에를 꺾었다. 예레미야는 평화를 예언한 말은 실제로 이루어질 때 참됨이 드러난다고 답하고 자리를 떠났다. 뒤에 다시 말씀이 임하자 나무 멍에 대신 쇠 멍에가 놓였다고 전하며 하나냐가 사람들에게 거짓을 믿게 했다고 선언했다. 하나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두 사람이 같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 다른 미래를 말한 갈등은 예레미야가 왜 환영받기 어려웠는지를 보여 준다.
이미 바벨론으로 끌려간 원로들과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편지를 보냈다.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가정을 이루어 수가 줄지 않게 하라고 했다. 끌려간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곳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도 전했다. 그 성읍의 평안이 포로들의 평안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곧 돌아온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속지 말고 칠십 년이 찬 뒤에 돌아오게 하실 때를 기다리라고 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바벨론의 승리를 좋아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오래 머물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그 안에서 살며, 회복의 때를 자기 계산으로 앞당기지 말라는 지침이었다.
여호야김 제사년에 예레미야는 처음 활동하던 때부터 받은 말씀을 두루마리에 쓰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불러 자신이 불러 주는 말을 받아 적게 했다. 자신이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바룩이 금식일에 백성 앞에서 읽었고, 소식을 들은 관리들도 따로 그 내용을 들었다. 그들은 예레미야와 바룩에게 숨으라고 한 뒤 두루마리를 왕에게 가져갔다. 여후디가 서너 단씩 읽을 때마다 여호야김은 칼로 잘라 화로에 던졌고, 왕과 신하들은 두려워하거나 옷을 찢지 않았다. 하나님은 두 사람을 숨기셨다. 예레미야는 새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여 바룩에게 다시 불러 주었고, 처음과 같은 말에 많은 내용을 더했다.
바룩도 이 일을 기계적으로 받아 적은 이름 없는 조력자로만 나오지 않는다. 두루마리를 기록하던 해 그는 고통과 탄식 때문에 지쳤다고 말했다.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진 개인적인 말씀은 온 땅이 무너지는 때에 자기 자신을 위한 큰일을 찾지 말라고 하면서도, 어디를 가든 목숨을 보존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바룩은 뒤에 예레미야의 토지 문서를 보관하고 이집트까지 함께 간다. 책은 그가 느낀 부담을 한 구절로 지워 버리지 않고, 무너지는 나라에서 말씀을 기록하고 보존한 사람으로 그의 자리를 남긴다.
시드기야 제십년에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포위되어 있었고, 예레미야는 왕궁 경비대 뜰에 갇혀 있었다. 그가 도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어가고 시드기야도 붙잡힐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 사촌 하나멜이 아나돗의 밭을 사 달라고 찾아왔다. 예레미야는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고 계약서를 써서 봉인한 것과 펼쳐 둔 것을 증인들 앞에서 바룩에게 맡겼다. 문서들은 오래 보존하도록 옹기에 넣게 했다. 적군이 땅을 차지한 때에 밭을 산 행동은 파괴를 부정한 낙관이 아니었다. 예레미야는 포위와 포로를 그대로 선포하면서도 언젠가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고팔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문서로 남겼다.
포위가 잠시 풀렸을 때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으로 가려고 예루살렘을 나섰다. 성문을 지키던 이리야는 그가 바벨론 사람들에게 넘어가려 한다고 몰아붙였다. 예레미야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관리들은 그를 때리고 서기관 요나단의 집을 감옥으로 삼아 가두었다. 지하 감옥에서 여러 날을 보낸 뒤 시드기야가 몰래 불러 말씀이 있는지 물었다. 예레미야는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답하면서, 자신을 그 감옥으로 돌려보내 죽게 하지 말아 달라고 청했다. 왕은 그를 경비대 뜰로 옮기고 성 안에 빵이 남아 있는 동안 날마다 한 덩이씩 주게 했다.
몇몇 관리들은 예레미야가 항복을 권해 군인과 백성의 사기를 꺾는다며 죽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시드기야가 그들의 손을 막지 않자 그들은 예레미야를 물 없는 웅덩이에 밧줄로 내렸고, 그는 바닥의 진흙에 빠졌다. 왕궁의 에티오피아 사람 에벳멜렉은 왕에게 이것이 악한 일이며 예레미야가 굶어 죽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왕은 사람들을 데려가 그를 건지라고 했다. 에벳멜렉은 낡은 천과 헝겊을 먼저 내려 보내 겨드랑이에 받치게 한 다음 밧줄로 끌어 올렸다. 예레미야는 다시 경비대 뜰에 머물렀다. 그를 살린 사람은 유다의 권력자가 아니라 왕궁에서 일하던 이방인이었다.
시드기야는 다시 비밀리에 예레미야를 불러 아무것도 숨기지 말라고 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장수들에게 나가면 왕과 성읍이 살지만 나가지 않으면 도성이 불타고 왕도 피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왕은 이미 넘어간 유다 사람들이 자신을 학대할까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예레미야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생명을 위해 말씀을 따르라고 권했다. 왕은 이 대화를 관리들에게 숨기라고 했고, 예레미야는 함락될 때까지 경비대 뜰에 남았다. 그는 왕의 질문에 듣기 좋은 답을 만들지 않았지만, 시드기야가 두려움을 말할 때 그 두려움을 조롱하지도 않았다.
마침내 시드기야 제십일년에 성벽이 뚫렸다. 왕은 달아났다가 붙잡혔고, 아들들이 눈앞에서 죽은 뒤 두 눈을 잃고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왕궁과 집들은 불탔고 성벽은 무너졌다. 바벨론 왕은 예레미야를 해치지 말고 원하는 대로 돌보라고 명령했다. 예레미야는 경비대 뜰에서 풀려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맡겨졌다. 포로들과 함께 사슬에 묶여 라마까지 갔던 장면에서는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다시 그를 풀어 주고, 바벨론으로 가서 보호받거나 원하는 곳에 머물 수 있다고 했다. 예레미야는 미스바의 그다랴에게 가서 땅에 남은 백성 가운데 살기를 택했다.
그다랴가 살해되자 남은 사람들은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해 이집트로 향하려 했다. 지휘관들과 백성은 예레미야에게 기도해 달라고 청하며 듣기 좋은 말이든 싫은 말이든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열흘 뒤 예레미야는 땅에 머물면 세우고 심으시겠지만 이집트로 가면 피하려던 전쟁과 굶주림이 따라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들은 그 말이 거짓이며 바룩이 자신들을 바벨론 사람에게 넘기도록 부추겼다고 비난했다. 지휘관들은 예레미야와 바룩을 포함한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도움을 청한 사람들이 답이 자기 계획과 다르자 예언자까지 계획 안으로 끌고 간 것이다.
이집트의 다바네스에서도 예레미야의 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파라오 궁 입구의 포장된 곳에 큰 돌들을 묻고, 바벨론 왕이 그 위에 왕좌를 펼 것이라는 표징을 보였다. 이어 이집트 여러 지역에 사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의 파괴를 기억하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일을 멈추라고 했다. 백성은 하늘의 여왕에게 제물을 바칠 때 오히려 풍족했다며 거절했다. 예레미야는 그 행위 때문에 재앙이 왔다고 맞섰고, 이집트 왕이 원수의 손에 넘겨지는 일이 경고의 표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은 그 뒤 예레미야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기록하지 않는다. 애가의 저자를 그라고 직접 밝히지도 않는다. 확인되는 마지막 모습은 고향을 떠나 이집트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계속 전하는 선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