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예수의 시작을 출생보다 앞에 두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신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고 소개한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며 그의 공적 활동, 죽음과 부활을 전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족보를 통해 그의 삶을 이스라엘의 오랜 이야기 안에 놓지만 배열과 강조점은 서로 다르다. 복음서에는 예수의 정확한 출생 날짜와 외모, 어린 시절의 일상 대부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네 기록을 하나의 세밀한 시간표로 억지로 맞추기보다, 각 복음서가 알려 주는 장면을 구별하면서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야 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살기 전에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다고 전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이 마리아를 드러내지 않고 관계를 정리하려 했으나, 꿈에 나타난 주의 사자의 말을 듣고 그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누가복음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아 예수라 부르게 될 것이라고 알린다. 두 복음서 모두 아이의 이름이 태어나기 전에 정해졌다고 말한다. 이후 사람들은 예수를 요셉의 아들로 알고 있었지만, 복음서는 그의 탄생을 성령의 역사와 연결한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요셉과 마리아는 황제의 명령에 따른 호적 등록 때문에 갈릴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갔다. 그곳에서 예수가 태어났고 마리아는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목자들은 천사들의 소식을 듣고 찾아와 아기를 본 뒤 들은 일을 전했다. 마태복음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별을 따라와 어린아이에게 경배하고 예물을 드린 일을 전한다. 헤롯이 아이를 죽이려 하자 요셉은 꿈의 지시를 따라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했으며, 헤롯이 죽은 뒤 돌아와 나사렛에 자리 잡았다. 복음서가 각기 보존한 세부 순서를 넘어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누가복음은 예수가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고 이름을 받았으며, 뒤이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시므온과 안나를 만났다고 기록한다. 열두 살 때에는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성전에 남아 율법 교사들의 말을 듣고 질문했다. 사흘 동안 찾던 마리아와 요셉이 그를 발견했을 때, 예수는 자기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가 순종했고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복음서가 전하는 그의 성장기 장면은 여기까지이며, 다음에는 성인이 된 예수가 등장한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를 선포할 때 예수는 갈릴리에서 와서 세례를 받았다. 물에서 올라오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고 하늘에서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복음서들은 이 일을 예수의 공적 활동이 시작되는 문턱에 둔다. 이어 예수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시험을 받았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먹을 것과 권세와 자기 과시에 관한 시험에 그가 성경 말씀으로 응답한 내용을 전하고, 마가복음은 그 기간을 짧게 요약한다. 세례와 시험 뒤 예수는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며 회개와 믿음을 촉구했다.
예수는 혼자 다니지 않고 제자들을 불러 함께 살며 배우게 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같은 어부들은 부르심을 받고 그물을 두었고, 세관에 있던 마태도 일어나 따랐다. 예수는 더 넓은 제자 무리 가운데 열둘을 따로 세워 말씀을 전하고 병을 고치도록 보냈다. 요한복음은 안드레와 다른 제자들이 세례 요한의 증언을 듣고 예수를 찾아간 일, 빌립과 나다나엘이 합류한 일,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된 첫 표징도 전한다. 제자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해한 완성된 사람들이 아니라, 질문하고 오해하며 실패하는 가운데 그를 따라간 사람들이었다.
갈릴리에서 예수는 회당과 집, 들판과 호숫가를 오가며 가르쳤다. 나사렛 회당에서 그는 이사야의 글을 읽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눌린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했다. 고향 사람들은 처음에는 놀랐지만 곧 분노해 그를 내쫓으려 했다. 가버나움에서는 그의 가르침과 치유를 보고 많은 사람이 모였다. 예수는 다른 마을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며 그곳으로 갔다. 복음서는 그가 배에서 잠들고, 새벽에 외딴곳에서 기도하며,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식사할 겨를조차 없었던 모습도 전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사람이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이 파고들었다. 산상수훈에서는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하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을 복되다고 했고,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불렀다. 분노와 욕망, 보복과 위선이 겉으로 드러난 행동보다 먼저 마음을 무너뜨린다고 가르쳤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했으며,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공연으로 만들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기도를 가르치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는 말로 삶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의 가르침은 말에 그치지 않았다. 복음서는 예수가 열병과 피부병, 마비와 시각 장애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치고 귀신 들렸다고 묘사된 사람들을 자유롭게 했다고 전한다. 중풍병자에게는 죄 사함을 선언한 뒤 일어나 걸으라고 했고, 죽은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린 장면도 기록한다. 폭풍 속에서는 두려워하는 제자들과 한 배에 있었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했다. 그는 많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면서도 모든 요청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았고, 때로는 한적한 곳으로 물러났다. 이 이야기들을 현대 의학의 진단표로 바꾸기보다 복음서가 말하는 고통, 회복, 권위와 연민을 그대로 읽는 것이 안전하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씨와 밭, 누룩과 잔치, 잃어버린 것과 맡겨진 재산 같은 일상의 모습으로 설명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같은 씨가 서로 다른 땅에서 다른 결과를 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작게 시작해 퍼지는 나라를 그렸다. 누가복음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이웃이 누가 되는지를 행동으로 되물었으며, 잃은 아들을 맞아들이는 아버지 이야기는 돌아온 사람을 향한 기쁨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큰아들의 분노를 함께 보여 주었다. 비유는 익숙한 일상의 모습을 사용했지만, 제자들도 그 뜻을 묻거나 깨닫지 못할 때가 있었고 듣는 사람의 선택과 마음을 드러냈다.
예수의 식탁에는 사회적으로 존중받던 사람만 앉지 않았다. 그는 세리와 죄인으로 불리던 사람들과 먹었고, 삭개오의 집에 머물렀으며,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대화했다. 여러 여성이 갈릴리부터 동행하며 자기 소유로 예수와 제자들을 섬겼고,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서는 일과 경청을 둘러싼 대화가 이어졌다. 그는 어린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라고 했다. 동시에 가족 관계를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을 새로운 가족의 범위 안에 놓았다. 복음서에 예수의 형제자매라고 불린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 관계의 성격을 더 규정하지는 않는다.
예수의 말과 행동은 갈등도 불러왔다. 일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가 죄를 용서한다고 말하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며 제자들이 전통적인 정결 관습을 따르지 않는 것을 문제 삼았다. 예수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고 답했으며,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에서 들어가는 음식보다 마음에서 나오는 악이라고 가르쳤다. 모든 바리새인이나 모든 유대 지도자가 같은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다. 니고데모는 밤에 찾아와 대화했고, 어떤 율법 교사는 중요한 계명에 관한 예수의 답을 긍정했다. 갈등이 커졌다는 사실을 당시 유대인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제자들을 보내 자신이 기다리던 이가 예수인지 물었을 때, 예수는 그들이 보고 듣는 치유와 가난한 사람에게 전해지는 복음을 요한에게 알리라고 했다. 이어 사람들에게 요한을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라 길을 준비한 예언자로 말했다. 헤롯에게 죽임을 당한 요한의 소식을 들은 뒤에는 따로 물러나려 했지만, 큰 무리가 따라왔다. 예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병든 사람을 고쳤다.
빈 들에서 예수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큰 무리를 먹였다. 이 사건은 네 복음서가 모두 기록한다. 이어 제자들이 탄 배가 바람에 시달릴 때 예수가 물 위로 다가왔고, 마태복음은 베드로도 물 위를 걷다가 두려움 때문에 빠진 일을 덧붙인다. 요한복음에서는 떡을 먹은 무리가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 하자 그가 물러났고, 다음 날에는 썩는 양식만 구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했으며 많은 제자가 그 말을 어렵게 여기고 떠났다. 많은 제자가 떠나자 예수는 열두 제자에게도 떠나려는지 물었고, 베드로는 그에게 영생의 말씀이 있다고 답했다.
가이사랴 빌립보 근처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물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그 무렵부터 예수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고난받고 죽임당한 뒤 살아나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거듭 알렸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그 길을 막으려 했고, 다른 제자들은 누가 더 큰지를 다투거나 높은 자리를 부탁했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했고, 큰 사람이 되려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제자들은 그를 옳게 고백하면서도 그가 택한 길을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다.
며칠 뒤 예수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랐다.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그와 이야기했다. 구름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말을 들으라는 소리가 들리자 제자들은 두려워 엎드렸다. 산에서 내려오며 예수는 자신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 본 것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산 아래에서는 다른 제자들이 고통받는 아이를 돕지 못하고 있었다. 변화산의 장면은 수난 예고를 지우지 않았고, 예수의 영광과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을 함께 놓았다.
예수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면서 제자도와 재물, 결혼과 용서, 기도와 섬김을 계속 가르쳤다. 영생을 묻는 부유한 사람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으나, 그는 많은 재산 때문에 슬퍼하며 떠났다. 여리고에서는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소리치는 것을 멈추지 않자 불러 고쳤고, 세리장 삭개오를 나무에서 내려오게 해 그의 집에 머물렀다. 누가복음은 삭개오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속여 빼앗은 것은 갚겠다고 한 일을 전한다. 길 위에서 예수는 사람을 무리 속 이름 없는 존재로 두지 않고, 부르고 묻고 결단하게 했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베다니에서 죽은 나사로를 무덤 밖으로 불러낸 일을 전한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예수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고,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나흘 동안 무덤에 있었다. 예수는 마르다와 부활에 관해 대화하고, 마리아와 함께 우는 사람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돌이 옮겨진 뒤 감사 기도를 드리고 큰 소리로 나사로를 부르자 그가 나왔다. 많은 사람이 믿었지만 이 일은 예수를 죽이려는 지도자들의 논의를 더욱 구체화했다. 생명을 돌려준 표징이 동시에 그의 죽음을 향한 위기를 앞당겼다.
예수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갔고 무리는 호산나를 외치며 맞았다. 성전에서는 매매하는 사람들의 상을 뒤엎고 그곳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대제사장과 장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그의 권위와 세금, 부활과 가장 큰 계명을 두고 질문했다. 예수는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두 계명에 율법과 예언자의 가르침이 달렸다고 답했다. 가난한 과부가 작은 동전 두 닢을 넣는 모습을 보고, 넉넉한 데서 일부를 낸 사람들보다 생활비 전부를 넣은 과부가 더 많이 냈다고 말했다. 그는 화려한 성전이 무너질 때와 다가올 고난을 말하며 깨어 있으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마지막 날들이 가까워질 때 예수는 베다니에서 향유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한 여인이 그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고 기록하고, 요한복음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그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았다고 전한다. 서로 다른 기록의 세부를 한 장면처럼 확정하거나, 이 여인을 누가복음 앞부분의 다른 여인과 동일시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예수는 낭비라는 비난을 받은 행동을 자신의 장례를 준비한 일로 받아들였다. 바로 그 시기에 가룟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에서 예수는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나누며 빵을 자기 몸, 잔을 언약의 피와 연결했고, 누가복음은 그가 자신을 기억하여 이 일을 행하라고 했다고 전한다. 요한복음은 유월절 전 만찬 자리에서 예수가 겉옷을 벗고 제자들의 발을 씻긴 뒤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준 일을 전한다. 예수는 그들 가운데 배반할 사람과 자신을 부인할 사람, 모두 흩어질 일을 알렸지만 제자들은 자신이 아니라고 장담했다. 왕으로 맞은 그는 마지막 밤에도 지위를 붙드는 방식이 아니라 낮아져 섬기는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보여 주었다.
식사 뒤 예수는 제자들과 겟세마네로 갔다. 그는 슬픔과 괴로움을 드러내며 가능하다면 이 잔이 지나가기를 구했지만,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가까이 데려간 제자들은 깨어 있지 못하고 잠들었다. 유다가 무리와 함께 와 입맞춤으로 그를 가리켰고 예수는 붙잡혔다. 한 제자가 칼을 휘둘러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었으나 예수는 폭력을 멈추게 했고, 누가복음은 그 귀를 고쳐 주었다고 전한다. 제자들은 달아났고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가다가 그를 세 번 모른다고 했다. 닭이 울자 베드로는 예수의 말을 기억하고 밖에서 울었다.
예수는 유대 지도자들의 심문을 받은 뒤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졌다. 누가복음은 빌라도가 그를 헤롯에게 보냈다가 다시 돌려받은 일도 기록한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를 고발했고, 빌라도는 무리의 요구에 따라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형에 넘겼다. 로마 군인들은 그를 조롱하고 때린 뒤 골고다에서 두 죄수 사이에 못 박았다. 복음서들은 십자가 위의 말씀과 주변 장면을 서로 다른 선택으로 전하지만, 예수가 실제로 죽었다는 데 일치한다. 그의 죽음에 관련된 특정 지도자와 관리와 군중의 행동을 유대 민족 전체의 책임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예수가 숨을 거둔 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시신을 요청했다. 그는 예수의 제자였으나 두려움 때문에 이를 숨겼다고 요한복음은 설명한다. 요셉은 시신을 내려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아직 아무도 묻히지 않은 무덤에 두고 큰 돌로 입구를 막았다. 요한복음에서는 니고데모도 향품을 가지고 와 장례를 도왔다. 갈릴리에서 따라온 여성들은 무덤과 시신이 놓인 곳을 보았고, 안식일이 지난 뒤 바르려고 향품을 준비했다. 예수의 장례는 제자들이 흩어진 뒤에도 위험을 감수한 사람들과 끝까지 지켜본 여성들의 행동으로 이루어졌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성들이 무덤을 찾았다. 네 복음서는 찾아간 여성의 명단, 천사들의 수와 위치, 제자들에게 소식이 전해지는 세부를 똑같은 순서로 기록하지 않는다. 마가복음은 여성들이 떨며 달아나 두려움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장면에서 끝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여성들이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했다고 말하고,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를 만나 제자들에게 알렸다고 전한다. 빈 무덤은 제자들의 예상이 만든 결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여성들의 말을 믿지 못하거나 두려워했고, 보고 난 뒤에도 놀라움 속에서 이해해 갔다.
부활한 예수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길을 걷고, 잠긴 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나타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며 평화를 빌었다. 도마는 직접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여드레 뒤 예수를 보고 주님이며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는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그물을 던질 곳을 알려 주고 아침 식사를 마련했으며,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을 묻고 양을 돌보라고 맡겼다. 마태복음은 예수가 제자들을 모든 민족에게 보내 가르치고 세례를 베풀라고 한 일을 전한다. 누가복음은 예수가 그들을 축복하며 하늘로 올라가고, 제자들이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기록한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대화에서 예수는 다른 제자의 앞날을 묻는 베드로에게 다시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