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우스 땅에 살던 사람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는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소개된다.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었고, 많은 양과 낙타와 소와 나귀와 종을 거느려 동방 사람 가운데 매우 큰 부자였다. 아들들이 차례로 잔치를 열고 누이들을 초대하면, 욥은 잔치가 끝난 뒤 자녀들을 불러 성결하게 하고 아침 일찍 각 사람을 위해 번제를 드렸다. 혹시 자녀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했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와 출생, 젊은 시절이 어떠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어느 민족에 속했는지와 우스 땅의 정확한 위치도 책은 밝히지 않는다. 알려진 시작은 이미 가정을 이룬 성인 때다.
이어서 이야기는 욥이 알지 못하는 하늘의 장면을 독자에게 보여 준다. 사탄은 욥이 아무 이유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느냐고 묻고, 그의 소유가 보호받기 때문에 충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욥 자신에게 손대지 않는 조건으로 그의 소유를 사탄의 손에 맡기셨다. 어느 날 스바 사람의 습격과 하늘에서 내린 불, 갈대아 사람의 약탈 소식이 잇따랐다. 마지막에는 큰 바람이 맏아들의 집을 무너뜨려 그곳에서 잔치하던 아들딸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욥에게는 이 연속된 재앙의 배후에서 오간 대화가 알려지지 않았다.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민 뒤 땅에 엎드렸다. 그는 빈몸으로 태어나 빈몸으로 돌아갈 것이며, 하나님이 주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신다고 말했다. 욥기는 이때 그가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향해 잘못을 말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사탄은 사람이 자기 생명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놓는다며 욥의 몸을 치면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라고 하셨고, 욥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심한 종기에 걸렸다. 그는 재 가운데 앉아 깨진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었다.
이 장면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욥의 아내는 그에게 아직도 온전함을 지키느냐며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했다. 욥은 그 말이 어리석다며 하나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았으니 어려운 것도 받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본문은 이때에도 그가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의 재난을 듣고 찾아왔다. 그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한 모습을 보고 울며 옷을 찢고 먼지를 뿌렸다. 고통이 매우 큰 것을 보고 이레 동안 밤낮 곁에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끝난 뒤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했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거나 태어날 때 죽었다면 쉬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을 기다려도 오지 않으며, 두려워하던 것이 자신에게 닥쳤고 평안도 안식도 없다고 탄식했다. 첫 장면에서 엎드려 예배한 말과 이 탄식은 서로 지워지지 않는다. 욥기는 그를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생일을 없애고 싶을 만큼 무너졌고, 왜 고생하는 사람에게 생명이 계속 주어지는지 질문했다.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은 차례로 욥에게 답했고, 욥은 각 사람의 말에 다시 답했다. 친구들은 무고한 사람이 멸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의인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욥에게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찾으라고 요구했다. 논쟁이 이어질수록 그들의 말은 더 직접적인 비난이 되었다. 엘리바스는 마침내 욥이 가난한 사람과 과부와 고아를 억압했기 때문에 재앙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앞부분의 하늘 장면은 욥의 고난이 친구들이 열거한 숨은 악행의 형벌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독자에게 이미 알려 준다.
세 친구는 같은 말을 똑같은 방식으로 하지 않았다. 엘리바스는 자신이 본 환상과 경험을 들었고, 빌닷은 이전 세대가 찾아낸 지혜를 배우라고 했으며, 소발은 하나님이 욥의 죄보다 가볍게 벌하셨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세 사람은 눈앞의 고통에서 욥의 죄를 거꾸로 증명하려는 방향으로 모였다. 욥은 그들을 불쌍한 위로자라고 부르며, 자신이 잘못했다면 막연한 비난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인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 처음 이레 동안 말없이 곁에 앉았던 친구들의 위로는, 원인을 확정하고 욥에게 자백을 요구하는 논쟁으로 바뀌었다.
욥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들을 길을 찾고 자신의 무죄를 밝히고자 했다. 그는 하나님과 자신 사이를 판단할 중재자가 없다고 탄식하고, 자신의 말이 기록되기를 바랐다. 가족과 친지와 종들이 자신을 멀리하고 어린아이들까지 조롱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구속자가 살아 있고 마침내 서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변론은 자신을 옳게 하려고 하나님의 판단을 부정하는가라는 반박도 불러왔다. 이 문장을 포함한 몇몇 구절은 번역마다 세부 표현이 다르지만, 욥이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가운데서도 자신을 변호할 마지막 증언자를 찾고 있었다는 흐름은 분명하다.
욥의 말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지혜롭고 능력이 크시며, 자신이 하나님을 법정으로 불러낼 수 없다고 말했다. 동시에 하나님이 자신을 과녁처럼 삼으신다고 느끼고 직접 대답을 요구했다. 악인이 오래 살며 힘을 얻는 현실을 들어 친구들의 단순한 보응 설명에 맞섰고, 가난한 사람이 땅에서 당하는 폭력을 길게 묘사했다. 때로 죽음이 가까웠다고 말했고, 때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길을 밝히고 싶다고 했다. 이 긴 대화는 욥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항의하면서도 그분에게 답을 구하는 이야기다.
대화 가운데에는 사람이 땅속에서 은과 금과 철을 찾아내고 어둠 속까지 파고들어도 지혜가 어디 있는지는 찾지 못한다는 노래가 놓여 있다. 지혜는 금이나 보석으로 값을 매길 수 없고 살아 있는 자들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으며, 하나님만 그 길과 자리를 아신다고 한다. 그 결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고 악을 떠나는 것이 명철이라는 말이다. 이 시는 욥이 묻던 구체적인 고통의 원인을 알려 주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광물의 숨은 곳은 찾아도 삶 전체를 다스리는 지혜를 소유할 수 없다는 경계를 대화 한가운데 세운다.
욥은 고난 이전의 삶도 회상했다. 그때 그는 성문 광장에 자리를 잡았고 젊은이와 노인이 그를 존중했으며 지도자들이 그의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도움을 청하는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건지고, 과부를 기쁘게 하며,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과 걷지 못하는 사람의 발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송사도 살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이 그를 비웃고 침을 뱉으며, 몸의 고통이 밤에도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높은 자리에서의 기억과 현재의 모욕이 그의 말 안에서 맞부딪쳤다.
세 친구와의 논쟁 끝에 욥은 자신의 삶을 걸고 마지막 변론을 했다. 그는 눈으로 욕망을 좇거나 거짓과 간음을 행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남종이나 여종이 자신과 다툴 때 그들의 권리를 무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의 필요를 외면하거나 고아와 과부를 해치지 않았고, 금을 의지하거나 다른 사람의 재난을 기뻐하지 않았으며 나그네를 밖에서 자게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땅을 부당하게 차지했다면 가시나 엉겅퀴가 나도 좋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이 답하시기를 바라며 변론을 마쳤다.
이 마지막 맹세에서 욥은 좋은 평판만 내세우지 않고 자신이 심판받아도 좋다는 조건을 항목마다 붙였다. 거짓을 행했다면 다른 사람이 수확하고, 가난한 사람을 외면했다면 자기 팔이 부러져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허물을 사람들처럼 숨겼거나 군중을 두려워해 침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하늘 장면에서 독자가 들은 평가를 욥이 알고 되풀이한 말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그 장면은 여전히 감추어져 있었고, 그는 실제로 살아온 행동을 증거로 하나님 앞에 서고자 했다.
그때까지 듣고 있던 부스 사람 엘리후가 말을 시작했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나이가 어려 기다렸다고 설명했다. 욥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옳다 하고 세 친구가 답을 찾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한 일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꿈과 고통과 여러 방식으로 사람을 경고하신다고 말하고, 욥이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몰아붙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하나님의 정의와 폭풍과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을 길게 말했다. 욥기는 욥이 엘리후에게 답하는 장면을 기록하지 않으며, 마지막에 세 친구를 꾸짖을 때 엘리후를 함께 언급하지도 않는다.
마침내 하나님이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처음 두 장에서 독자에게 보여 준 사탄과의 대화를 욥에게 설명하지는 않으셨다. 대신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욥이 어디 있었는지, 바다의 경계를 누가 정했는지, 눈과 우박의 창고와 별자리의 길을 아는지 물으셨다. 사자와 까마귀의 먹이, 산염소의 출산, 들나귀와 들소와 타조와 말과 매와 독수리의 삶도 질문하셨다. 욥이 통제하지 못하고 자세히 알지 못하는 세계가 그의 고통 바깥에서도 넓고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님은 자신과 논쟁하는 사람이 대답해 보라고 하셨다. 욥은 자신이 보잘것없어 무엇이라 답하겠느냐며 손으로 입을 가리겠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은 정의를 무너뜨려 자신을 옳게 만들겠느냐고 묻고, 사람이 제압할 수 없는 두 강한 생물을 길게 묘사하셨다. 이 말씀은 욥의 자녀가 왜 죽었는지나 그가 왜 병들었는지를 항목별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욥에게 자신의 지식과 힘의 한계를 마주하게 하고, 자신이 판단하려 했던 세계의 크기를 다시 보게 했다.
욥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고 어떤 계획도 막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말했음을 인정했다. 전에는 귀로 들었지만 이제는 눈으로 하나님을 뵈었다고 하며, 먼지와 재 가운데서 자신의 말을 거두고 뉘우쳤다. 이 마지막 응답을 욥이 자기 존재를 미워했다는 뜻으로 옮기는 번역도 있고 자신의 주장을 거두었다는 뜻으로 옮기는 번역도 있다. 그러므로 그의 결말을 모든 질문의 답을 배웠다는 문장으로 넓힐 수는 없다. 본문은 그가 하나님을 만난 뒤 자신의 말과 자리를 다시 보았다고 전한다.
하나님은 엘리바스와 두 친구가 욥처럼 옳게 말하지 않았다고 책망하셨다. 그들에게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욥에게 가져가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고,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 받아들이겠다고 하셨다. 세 사람은 말씀대로 했고 욥은 자신을 정죄하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 뒤 하나님은 욥의 형편을 돌이키고 이전 소유의 갑절을 주셨다. 형제와 자매와 옛 지인들이 찾아와 함께 먹고 그를 위로하며 선물을 주었다. 회복은 잃었던 자녀들이 죽지 않았던 일이 되게 하지는 않았지만, 욥에게 다시 관계와 재산과 앞으로의 시간이 주어졌다.
욥은 다시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얻었다. 세 딸의 이름은 여미마와 긋시아와 게렌합북이었고, 욥은 딸들에게도 그들의 형제들과 함께 기업을 주었다. 그는 그 뒤 백사십 년을 더 살며 자손 사 대를 보았다. 욥기는 그의 아내와 세 친구의 마지막 날, 새 자녀들이 자라는 과정은 말하지 않는다. 욥은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다. 그의 성경 이야기는 재산이 두 배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새 가족과 여러 세대를 본 뒤, 긴 삶의 끝에 죽는 장면까지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