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는 아담의 계보에서 라멕의 아들로 처음 등장한다. 라멕은 땅이 저주를 받아 사람들이 수고하고 고생하는 가운데 이 아들이 위로를 줄 것이라고 말하며 이름을 노아라고 지었다. 그러나 노아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무슨 일을 하며 자랐는지, 누구와 결혼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성경이 다음으로 알려 주는 가족 관계는 노아가 오백 살이 지난 뒤 셈과 함과 야벳 세 아들을 두었다는 사실이다. 아내와 세 며느리도 뒤에 함께 등장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노아가 살던 때에 사람들의 악은 커졌고 땅은 폭력으로 가득 찼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이 계속 악한 것을 보시고, 사람뿐 아니라 땅 위의 생물을 쓸어버리겠다고 하셨다. 그 가운데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 그는 자기 세대에서 의롭고 흠 없는 사람으로 소개되며 하나님과 동행했다. 이 말은 노아의 생애에 잘못이 전혀 없었다는 결론이 아니다. 창세기가 먼저 보여 주는 것은 폭력이 퍼진 세상에서 그가 하나님 앞에 다르게 살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홍수가 닥칠 것을 알리고 큰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다. 방주는 나무로 만들고 안팎에 역청을 칠하며, 방과 문을 내고 세 층으로 나누어야 했다.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었다. 하나님은 심판을 알리는 말씀과 함께 노아와 언약을 세우겠다고 먼저 말씀하셨다. 노아는 아내와 아들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 살아남을 것이었다. 방주는 노아 한 사람만 피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 가족과 여러 생명의 보존을 맡는 자리였다.
하나님은 여러 생물이 암수로 방주에 들어와 살아남게 하라고 하셨고, 사람과 동물이 먹을 양식을 미리 모으라는 일도 맡기셨다. 어떤 나무를 어디에서 얻었는지, 방주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창세기에 나오지 않는다. 이 긴 준비 과정에서 노아가 했다고 기록된 말도 없다. 본문은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모든 일을 했다고 두 차례 확인한다. 노아의 첫 큰 책임은 다가올 위험을 말로 설명하는 장면보다, 가족과 생물이 머물 구조를 실제로 준비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노아가 육백 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와 온 가족에게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정결한 짐승과 새는 일곱 쌍씩, 그렇지 않은 짐승은 한 쌍씩 노아에게 와서 들어갔다. 이레 뒤, 노아가 육백 살 되던 해 둘째 달 열이렛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 비는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내렸다. 노아와 아내, 셈과 함과 야벳, 세 며느리, 그리고 생물들이 모두 들어간 뒤 하나님이 문을 닫으셨다. 물이 차오르면서 방주는 땅에서 떠올랐다.
홍수는 방주 안과 밖의 삶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물은 점점 불어나 높은 산들을 덮고도 십오 규빗이나 더 올라갔다. 마른땅에서 숨 쉬던 사람과 새, 가축과 들짐승, 땅에 기는 생물은 모두 죽었고, 노아의 가족과 방주에 있던 생물들만 남았다. 물은 백오십 일 동안 땅 위에 불어나 있었다. 노아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방주 안에서 가족이 어떤 말을 나누었는지, 동물들을 돌보는 하루가 어떠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가족과 많은 생명을 맡은 채 물이 줄어들 때까지 닫힌 방주 안에 머물렀다.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 안의 모든 생물을 기억하시고 땅 위에 바람을 일으키시자 물이 줄기 시작했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닫히고 비도 그쳤다. 백오십 일이 지난 뒤 물이 줄었고, 일곱째 달 열이렛날 방주는 아라랏 산지에 머물렀다. 그러나 산봉우리가 보인 것은 열째 달 초하루가 되어서였다. 창세기는 노아가 방주의 방향을 정하거나 도착할 곳을 선택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방주가 멈춘 일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일도 같지 않았다. 가족은 물 위를 떠다니는 시간이 끝난 뒤에도 땅이 드러나고 마르기를 더 기다려야 했다.
사십 일이 지난 뒤 노아는 창을 열고 먼저 까마귀를 내보냈다. 이어 비둘기를 보냈지만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해 돌아왔고, 노아는 손을 내밀어 방주 안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이레를 기다렸다가 다시 비둘기를 보냈다. 저녁에 돌아온 비둘기의 부리에는 싱싱한 올리브 잎이 있었다. 노아는 물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이레를 기다려 세 번째로 내보낸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노아는 조급하게 문을 열고 가족을 이끌고 나오지 않고, 보이는 징후를 확인하며 기다렸다.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루에 땅 표면의 물이 걷혔다. 그는 방주 덮개를 열어 땅바닥이 마른 것을 보았지만 곧바로 나오지는 않았다. 둘째 달 스무이렛날, 하나님이 가족과 모든 생물을 데리고 나오라고 말씀하신 뒤에야 노아는 아내와 아들들, 며느리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동물들도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다. 밖의 상태를 직접 확인한 뒤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린 것이다. 노아가 방주를 떠나 가장 먼저 한 것으로 기록된 일은 하나님을 위해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새 가운데 제물을 골라 번제로 드린 것이었다.
하나님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거나 홍수 때와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사람의 마음이 어려서부터 악한 성향을 지닌다는 판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씨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땅이 있는 동안 계속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노아와 가족이 나온 땅은 홍수 이전과 똑같은 세상이 아니었고, 인간이 갑자기 악을 모르는 존재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심판을 지난 뒤에도 땅을 경작하고 음식을 얻으며, 계절과 생명이 이어지는 세상에서 다시 살아가야 했다.
하나님은 노아와 아들들에게 함께 복을 주어 자녀를 낳고 땅에 번성하라고 하셨다. 새 출발에 관한 책임은 노아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세 아들에게도 직접 전해졌다. 동물들은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푸른 식물을 주셨던 것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도 먹을거리로 허락되었다. 그러나 생명을 나타내는 피가 있는 채로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또한 짐승이나 사람이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린 일에는 생명의 책임을 묻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었다. 새 출발은 먹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 삶이면서 동시에 다른 생명, 특히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다루지 말아야 하는 삶이었다.
이어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과 그 후손뿐 아니라 방주에서 나온 새와 가축과 들짐승을 포함한 모든 생물과 언약을 세우셨다. 홍수 전에 노아와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셨던 말씀이 이제 가족과 모든 생물 앞에서 구체적인 약속으로 주어졌다. 다시는 홍수로 모든 생물을 멸하거나 땅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구름 사이에 놓인 무지개는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한 언약의 표가 되었다. 하나님은 구름이 모이고 무지개가 나타날 때 이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약속은 노아 개인의 안전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과 말을 할 수 없는 땅의 생물들까지 그 범위 안에 들어갔다.
홍수 뒤 노아는 농부가 되어 포도밭을 일구었다. 그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누웠다. 함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밖에 있는 형제들에게 알렸고, 셈과 야벳은 옷을 어깨에 걸친 채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몸을 덮었다. 술에서 깬 노아는 가나안이 형제들의 가장 낮은 종이 되리라고 말했다. 그는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가나안이 셈의 종이 되리라고 했고, 하나님이 야벳에게 넓은 곳을 주시고 셈의 장막에 살게 하시며 가나안이 야벳의 종도 되리라고 말했다. 본문은 함이 한 일을 전하지만 저주의 대상으로 이름 붙은 사람은 함의 아들 가나안이다. 창세기는 이 말을 후대의 인종이나 민족에 적용하지 않는다.
노아는 홍수 뒤에도 삼백오십 년을 더 살았다. 창세기는 셈과 함과 야벳에게서 온 땅으로 사람들이 퍼져 나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아 자신이 포도밭 사건 뒤에 무엇을 했는지, 아들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는 더 말하지 않는다. 그가 어디에서 죽고 어디에 묻혔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방주를 짓고 생명을 돌보았으며 모든 생물과 맺은 언약의 말을 들었던 노아의 삶에는 취함과 가족 안의 수치, 후손을 향한 무거운 말도 함께 남았다. 노아는 모두 구백오십 년을 살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