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어린 시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신약은 길게 들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자신을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난 유대인이라고 소개했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베냐민 지파에 속한 히브리인이라고 썼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가말리엘에게서 조상들의 율법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가 처음 신약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올 때 사용된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험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증인들은 겉옷을 사울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사울은 그 죽음에 찬성했다고 사도행전은 말합니다. 그 뒤 그는 집집마다 들어가 남녀를 끌어내어 감옥에 넘겼습니다. 자신이 훗날 편지에서 돌아보았듯이,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고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박해가 다른 도시로 퍼지자 사울은 다메섹까지 가려 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편지를 받아, 그곳에서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끌고 올 권한을 얻었습니다. 다메섹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하늘에서 빛이 그를 둘러쌌습니다. 땅에 엎어진 사울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사울이 박해하는 일이 곧 예수님을 박해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그 뒤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한 채 다메섹에 머물렀습니다. 그 도시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신자들에게 한 일을 알고 있어 그에게 가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울이 이방인과 왕들, 이스라엘 자손 앞에 자신의 이름을 전할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손을 얹자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고, 그는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며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처음 한 일은 자신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회당에 들어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박해하러 왔던 사람이 바로 그 이름을 전하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사울의 말을 듣고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사울이 더욱 힘을 얻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했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 시기의 일을 돌아보며, 처음에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고 썼습니다. 두 기록은 사울이 부르심을 받은 뒤 곧바로 예루살렘의 중심으로 돌아가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다메섹과 그 주변에서 시간을 보냈음을 보여 줍니다.
그 변화가 곧바로 모두의 신뢰를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의 회당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하기 시작했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없애려 했던 사람이 아니냐고 놀랐습니다. 시간이 지나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성문을 지키자, 제자들은 밤에 그를 광주리에 담아 성벽의 구멍으로 내보냈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뒤에도 제자들은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다메섹 길에서 일어난 일과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한 일을 설명한 뒤에야 그는 제자들 사이를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사울은 한동안 다소로 떠났고,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섬길 사람을 찾으러 그를 찾아갔습니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안디옥 교회에 모여 많은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습니다. 유대에 흉년이 닥칠 것이라는 말이 전해지자 안디옥의 제자들은 각자 힘대로 도움을 보내기로 했고, 바나바와 사울이 그 도움을 예루살렘의 장로들에게 전했습니다. 사울의 일은 이제 한 사람의 회심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여러 교회 사이를 잇는 일이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예배하고 금식할 때 성령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구브로와 여러 지역을 다니며 회당과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이 무렵부터 사울을 바울이라고도 부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는 일을 보았고, 그 일은 곧 교회 안의 큰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으려면 먼저 유대인의 모든 관례를 따라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두 사람이 안디옥을 떠나 처음 간 곳은 바나바의 고향 섬 구브로였습니다. 그들은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총독 서기오 바울도 그 말씀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이어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바울은 회당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했습니다. 처음 안식일 뒤에는 많은 사람이 다시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지만, 반대도 커졌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유대인에게 전해져야 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물리쳤으니 이제 이방인에게로 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특정 사람들을 버리는 선언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복음이 더 넓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이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키자 군중이 두 사람을 신으로 여기려 했습니다. 바나바를 제우스라 하고 바울을 헤르메스라 부르며 제사를 드리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옷을 찢고 군중 가운데로 뛰어들어 자신들도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군중을 설득했고, 바울은 돌에 맞아 성 밖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그가 죽은 줄 알았지만, 제자들이 둘러서자 그는 일어나 다시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처럼 환영과 폭력을 모두 겪으면서도, 제자들을 굳게 하고 여러 교회에 장로들을 세운 뒤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사도들과 장로들은 이 문제를 놓고 오래 이야기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주신 일을 말했고, 바나바와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통해 다른 민족 가운데서 행하신 표적과 일을 전했습니다. 회의 뒤 교회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보낼 편지를 정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같은 믿음 안에서 받아들여진다는 문제를 여러 편지에서 계속 다루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후 함께 길을 나서는 일을 두고 갈라졌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택해 교회들의 부탁을 받으며 떠났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났고, 빌립보에서는 루디아의 집에 머물렀으며 감옥에도 갇혔습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아테네와 고린도, 에베소에서도 그는 회당과 시장, 집과 모임에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받아들였고, 어떤 곳에서는 소동과 반대가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도시를 옮길 때마다 새로 생긴 신자들과 교회가 남도록 애썼고, 떠난 뒤에는 편지로 그들과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빌립보에서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은 뒤 감옥 가장 깊은 곳에 갇히고 발에는 차꼬가 채워졌습니다. 한밤중에 두 사람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고, 다른 죄수들이 듣고 있었습니다. 큰 지진으로 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매임이 풀렸을 때, 간수는 죄수들이 달아난 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습니다. 바울은 모두 그대로 있다고 소리쳐 말했습니다. 간수는 두 사람을 데리고 나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고, 그 밤에 바울과 실라는 그와 그의 집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다음 날 바울은 자신들이 재판도 받지 않은 로마 시민인데 공개적으로 매질하고 감옥에 넣었다고 관리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는 시민권을 자신의 안전을 위한 특권으로만 쓰지 않고, 동료와 새로 생긴 교회를 지키는 문제 속에서 사용했습니다.
몇 해 뒤 바울은 여러 교회가 모은 도움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곳 성전에서 그를 본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켰고, 로마 군인들이 그를 붙잡아 보호했습니다. 바울은 군중 앞에서 다메섹 길의 일을 다시 말했고, 산헤드린과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헤롯 아그립바 앞에서도 자신이 왜 예수님을 전하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으로서 황제에게 상소했고, 결국 죄수의 몸으로 로마를 향해 배를 탔습니다. 항해 중 배는 큰 폭풍을 만나 파선했지만,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건졌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면에서 바울은 로마에 도착해 따로 머물며 자신을 지키는 군인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아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을 가르쳤습니다. 신약에는 바울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여러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그가 그 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마지막 바울의 모습은 갇힌 처지에서도 사람들을 맞아 예수님에 관해 말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