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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물전

솔로몬

사무엘하 12:24–25; 열왕기상 1:1–11:43

솔로몬은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이었다. 다윗은 그를 솔로몬이라 불렀고, 하나님은 예언자 나단을 보내 여디디야라는 이름도 주셨다. 성경은 그의 어린 시절을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다윗이 늙었을 때 형 아도니야는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나서 병거와 기병을 마련하고 사람들을 모았다. 예언자 나단은 밧세바에게 이 일을 알렸고, 두 사람은 다윗에게 솔로몬이 왕위를 이을 것이라는 약속을 상기시켰다.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나단에게 솔로몬을 자신의 노새에 태워 기혼으로 데려가 기름을 붓게 했다. 백성이 “솔로몬 왕 만세”라고 외치자 아도니야의 잔치는 흩어졌다.

솔로몬은 왕좌에 앉은 뒤 다윗에게서 하나님께 충실하고 율법을 지키라는 유언과 해결해야 할 정치적 문제들을 전해 들었다. 다윗이 죽자 아도니야는 밧세바를 통해 다윗을 섬기던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요청했다. 솔로몬은 그 요청을 왕위에 대한 요구로 받아들여 아도니야를 죽이게 했다. 제사장 아비아달은 추방했고, 군대 지휘관 요압은 제단 뿔을 붙잡았지만 처형되었다. 시므이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뒤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솔로몬의 왕권은 피 흘리는 숙청을 거쳐 굳어졌다. 그는 이집트 파라오의 딸과 결혼해 동맹을 맺기도 했다.

솔로몬은 기브온에서 많은 번제를 드렸다. 그 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원하는 것을 구하라고 하셨다. 솔로몬은 자신이 어린아이처럼 백성을 이끌 줄 모른다고 고백하며 선과 악을 분별하고 백성을 재판할 수 있는 듣는 마음을 구했다. 하나님은 장수나 부나 원수의 죽음 대신 분별력을 구한 것을 기뻐하시고, 지혜와 함께 부와 명예도 주겠다고 하셨다. 얼마 뒤 한집에 살던 두 여자가 살아 있는 아기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판결해 달라고 찾아왔다. 솔로몬은 칼로 아이를 둘로 나누라고 명령해 두 사람의 반응을 드러냈고, 아이를 살려 달라고 한 여자에게 아기를 주었다. 온 이스라엘은 왕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있음을 보고 두려워했다.

솔로몬의 통치는 넓은 행정 조직과 풍성한 궁정으로 알려졌다. 그는 열두 지방 관리에게 왕실의 식량을 달마다 공급하게 했고, 병거와 말을 많이 두었다. 성경은 그의 지혜가 주변 모든 사람보다 뛰어났고 잠언 삼천 개와 노래 천다섯 편을 지었으며 식물과 동물을 논했다고 말한다.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그의 지혜를 들으러 왔다. 그러나 이 번영에는 큰 노동 부담도 따랐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에서 삼만 명을 징발해 번갈아 레바논으로 보냈고, 짐꾼 칠만 명과 산에서 돌을 캐는 사람 팔만 명을 두었다. 이 노동력은 성전 건축에 동원되었다.

왕이 된 지 넷째 해에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 두로 왕 히람에게서 백향목과 기술자를 얻고 정교한 돌과 나무와 금으로 건물을 꾸몄다. 성전은 일곱 해 만에 완성되었고, 자신의 궁전과 여러 건물을 짓는 데에는 열세 해가 걸렸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지성소에 들이자 구름이 성전을 가득 채웠다. 솔로몬은 백성을 축복하고, 하늘과 가장 높은 하늘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는데 자신이 지은 집이 어떻게 그분을 모시겠느냐고 기도했다. 그는 이곳을 향해 드리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간구하면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인정했다.

봉헌 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 그가 정직하게 걸으면 왕조를 세우겠지만 왕과 후손이 돌아서 다른 신들을 섬기면 이스라엘을 땅에서 끊고 성전도 버리겠다고 경고하셨다. 솔로몬은 여러 건축 사업을 계속했고 남아 있던 가나안 민족에게 강제 노역을 부과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군인과 관리와 지휘관으로 삼았다. 그는 배를 만들고 금을 들여왔으며, 무역과 조공으로 막대한 부를 모았다. 은을 예루살렘에서 돌처럼 흔하게 만들었다는 표현도 나온다. 동시에 많은 병거와 말을 모았고, 이집트와 여러 지역에서 말을 거래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어려운 질문으로 시험하려고 예루살렘에 왔다. 그는 여왕의 모든 질문에 답했고, 여왕은 그의 지혜와 궁정의 질서와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보고 놀랐다. 여왕은 솔로몬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향료와 금과 보석을 주었다. 솔로몬도 여왕이 원하는 것을 주어 돌려보냈다. 이 장면은 그의 명성이 국경을 넘어 퍼졌음을 보여 준다. 열왕기는 이어 금 방패와 상아 왕좌와 화려한 그릇, 무역선과 병거를 열거한다. 그러나 이렇게 커진 부와 왕권은 뒤이어 나오는 솔로몬의 불순종과 나란히 놓인다.

솔로몬은 파라오의 딸 외에도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사람 출신의 많은 여자를 사랑했다. 왕비가 칠백 명, 후궁이 삼백 명이었다. 하나님은 이 민족들과 혼인하면 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 돌릴 것이라고 경고하셨지만, 솔로몬은 그들에게 매달렸다. 그가 늙자 아내들은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 돌렸고, 그는 아스다롯과 밀곰을 따랐다. 예루살렘 동쪽 산에 그모스와 몰렉을 위한 산당을 지었고, 다른 외국인 아내들을 위해서도 같은 일을 했다. 아내들은 각자의 신에게 향을 피우고 제사를 드렸다. 솔로몬의 마음은 아버지 다윗의 마음처럼 하나님께 온전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두 번 나타나 경고했는데도 언약과 명령을 지키지 않은 솔로몬에게 노하셨다. 나라는 그의 아들에게서 찢어지되 다윗과 예루살렘을 위해 한 지파는 남기겠다고 하셨다. 에돔 사람 하닷과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이 솔로몬의 대적이 되었다. 솔로몬의 관리였던 여로보암도 반기를 들었다. 예언자 아히야는 새 겉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 그중 열 조각을 여로보암에게 주며, 솔로몬의 불순종 때문에 열 지파를 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자 그는 이집트로 달아나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머물렀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사십 년 동안 다스렸다. 열왕기는 그의 지혜와 업적을 기록한 자료가 따로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의 마지막 회개를 서술하지 않는다. 그는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아버지 다윗의 성에 장사되었고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다. 하나님이 예고하신 왕국의 분열은 아들 르호보암의 통치 때 닥칠 일로 남았다. 솔로몬의 생애는 듣는 마음과 성전 건축, 국제적인 명성만이 아니라, 강제 노역과 축적된 권력, 언약을 떠난 예배가 다음 세대에 남긴 결과까지 함께 전한다.